Posts

Showing posts from March, 2022

영의 암 교만

교만은 모든 죄악의 뿌리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하는 사람은 이 교만을 가리켜서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질투를 낳고, 분노를 낳고, 탐심을 낳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만 의롭고 다른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무시했습니다. 자기 의를 앞세우면 다른 사람을 멸시하게 됩니다. 교만은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의 죄악.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귀히 여기는 것은 절대로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만 사랑하는 것은 죄입니다. 자기만 사랑하는 것! 교만은 이웃과 나 사 이에 벽을 쌓는 죄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웃과 나 사이에 벽을 쌓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세리들과 따로 자기가 기도하는 자리조차 구별해서 서서 따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 교만은 자기숭배(ego worship)의 병입니다.  마귀가 가장 사랑하는 죄는 "겸손을 흉내 내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자 리에서 내려와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기도를 많이 하는데도 자기변화가 없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위장이 많습니다. 자기 마음의 열등감이 심한 사람일수록 자기를 내세우는 기도를 많이 함으로 자기불안을 덜어보려는 자기위장을 강하게 합니다. 기도의 주어는 내가 아닌 하나님입니다. 기도는 무엇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구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채로 진솔하게 기도하면 하나님 의 자비와 긍휼의 도우심을 입고 회복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합시다. 교만은 기도와 은혜의 통로를 막아버립니다. 교만을 극복하는 길 : 세리의 자리로 내려가라  세리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가 슴을 치며 머리를 들지 못했고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회개는 최상의 기도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합니다. 이웃의 도움도 받아들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붙잡고 다른

내가 할일은 예수님의 일에 참여하는것

 나는 세상이 나의 삶의 방향과 목적을 dictate하게 하고, 불순종과 unbelief로 가득찼었다. 우리 모.두. 한명도 빠짐없이 이런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에게 그분의 자비와 사랑으로 안으시고 우리의 죄로 죽은 삶을 예수님안에서 살리시고, 오히려 하늘에 예수님 자리 옆을 내어주신다. 그런분이 나의 아버지다. 이 모든일에 그분이 계획하시고 이루신다. 나는 그저 그분이 일을 하실수 있도록 내 마음을 항상 사랑과 자비로 두드리고 계신 주님께 문을 열어드리는것 뿐이다. 그리고 내가 해야할 일 곧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게 만드신다.  내가 자랑할일이 없는 것은 어제만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던 자이고, 오직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그 자리게 한번에 가게 됬기 때문이다. 지금 예수님을 모르는 이웃들도 예수님은 그분의 십자가로 하나되서 하셨다. 이방인이었던 나를 부르신것 처럼 지금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을 부르신다. 왜냐하며 성령님은 모두에게 동일하시고, 우리는 동일하게 아버지께 가는 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It wasn’t so long ago that you were mired in that old stagnant life of sin. You let the world, which doesn’t know the first thing about living, tell you how to live. You filled your lungs with polluted unbelief, and then exhaled disobedience. We all did it, all of us doing what we felt like doing, when we felt like doing it, all of us in the same boat. It’s a wonder God didn’t lose his temper and do away with the whole lot of us. Instead, immense in mercy and with an

세상것으로 확인 받으려는 나

 예수님안에서 우리 개인을 향한 목적이 있고, 그것에 따라 우리는 디자인 됬다. 예수님은 모두에게 모든일에 그 계획에 따라 일하신다.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주신 성령님이 우리에게 계획하신 모든일과 그분을 찬양하며 거룩함 삶과 그분의 뜻이 이미 우리안에 이루어주심을 확증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뜻과 예정하심을 따라 모든 그분의 자녀들의 깨끗한 눈과 마음, 지혜와 분별력을 위해 기도해야한다. 모든 능력과 힘은 주님이 내려 주신다. 예수님은 이 땅의 주인이시고 이땅과 영생 모두를 다시리신다. 우리는 그분의 몸이요 교회다. 교회는 세상의 악세사리가 아니라, 세상이 교회의 악세사리다. 하나님은 예수님께 모든 통치권을 주시고 예수님의 임재로 나를 충만하게 채우시고, 일하시고 말씀하신다. 세상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그런데 나는 왜이리 세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예정하심을 확인하려 하나? 왜 세상을 통해 나에게 주신 소망, 기쁨, 콜링, 평안을 얻으려고 하나?  나를 향한 주님의 목적은 이미 이루어졌고 성령님이 그것을 증거하신다.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을 바라보며 주시고 이미 이루신 소명을 향해 중보하며 나아가자. 세상의 좋은것으로 나의 소명을 확인 받으려 바둥데며 살지말자.  내가 모든 결정에 심히 고민하는것은 세상의 결정이 내 구원을 좌우하듯 믿으며, 세상이 주체이듯 생각하며 기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미 그분의 뜻을 내 삶이 이루심을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나의 결정이 하나님의 나를 향한 구원에 영향을 주듯 두려움과 불안함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이루심을 믿고 자유함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하나님, 이미 제 삶에 성령님을 보증으로 주시며, 하나님이 제 계획에 이루실 모든것이 이미 제 삶에 이루어 졌슴을 감사하며 믿습니다. 세상 (직장의 결정)이 중심이 아니며, 주님이 다스리시고 주님의 임재로 채우시는 주님의 몸이 중심임을 믿습니다. 세상에서 높은 곳으로 가기위해 조급한 마음이 중심이 아닙니다. “It’s in

Focus on what God is doing

 세상의 정욕과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은 반대다. 세상은 내 중심이기에 항상 분주하고 부족하기에 감사가 없다. 또 이루면 교만이 된다. 세상은 나를 일로 증명하라고 부추기며 하나님이 다스라고 주신 일을 우상을 삼게 한다.  하나님이 내안에 하시는 일을 보아야 한다. 나에게 무슨일이 주어졌나를 물어야한다. 그럴때 이웃, 친구들을 섬길수 있고 sink myself into할수 있다.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나의 삶과 이웃들의 삶에 하나님이 하시는일을 보지 못하고 판단하게 된다.  It is what God is doing in me and others! Creative best I can with my own life! 이웃의 짐을 같이 지고 중보로 하나님이 그들삶에 하시는 일을 바라보자.

나의 위치

세상은 항상 할일이 많아 잔뜩 긴장하며 anxious하며 이 마음에 눌려 우울하고 다 하기 싫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싸우게 하며, 오히려 이런 어두운 마음을 주신 주님을 원망하게 만든다. 조금씩 주님과 멀어지게 한다.  이 세상에 음성에 자꾸 유혹되는 것은 내 마음의 근본은 내가 모든것을 다스리고 높아지고 이루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땅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세상과 사람과 시간을 만드셨고, 우리에게 맞는 달란트도 건강도 주셨다. 그런데 나는 내가 콘트롤해서 짧은 시간에 많은것을 이루고 싶어 항상 맘이 힘들다. 이루면 또 교만해진다. 교만함은 더더욱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다. 나의 자리를 알자. 그분은 이땅과 모두를 다스리신다. 이 순간도 나의 모든것을 다스리신다. 그분을 믿음으로 오늘도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자.  가족의 영육간의 강건 영서 즐거운 생일파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직장으로 강권적으로 인도하심 애나언니의 마음의 위로 이웃의 영혼구혼 좋은집 주시길, 평평한 마당, 오픈 레이아웃, 좋은 이웃 나는 이곳에 맨몸으로 왔으므로, 나에게 있는 모든것은 주님이 주신것이다. 세상이 말하는 음성에 마음에 빼앗겨 더 이루려고 바둥대지 말고, 내 자리를 깨달아 감사함으로 좋은 아버지께 기도로 나아가자.

부모를 공경

부모님께 받은 상처 그들고 인해 어린나이부터 잃어버린 나의 욕구들을 찾고 싶다. 엄마로 인해 또 그걸 혼내지 않고 넘기는 아빠로 인해 나는 항상 버려질 두려움과 인정받지 못하는 절망 또 나의 존재 자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비교당했고 정의가 아닌 결정으로 혼란스러워했다. 그것도 모자라 내 안에 엄마안에 있는 욕심, 비교, 정죄, 질투, 돈의 우상화, 어두움, 우둔함을 나에게 물려준것에 분개했다. 또 미워하는 내자신을 보며 얼마나 정죄함과 싸워야 했나. 이런 어두움을 깨닫고 싸우기 위해 내 인생이 얼마나 희생하고 고통당해야 했나. 내가 40이 넘어서 까지 엄마가 물려준 어두움과 싸움으로 잊어버린 시간들이 억울하고 아깝다.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들은 나를 어두움으로 몰고 간다.하지만 내 감정의 책임은 나다. 내가 엄마가 주는 상처와 동일하게 사랑받아야 할 내 욕구를 여전히 채워주지 않는다고 열받고 미워한다면 그건 내 책임이다. 엄마가 깨달아 나에게 용서를 구할것도 아니고 그분은 그렇게 앞으로도 사실꺼다. 내 감정의 주인을 엄마에게 주지말자. 내가 아직도 엄마때문에 괴로워 한다면, 나는 아직도 엄마에게 조정당하는 거다. 나는 가정을 이뤄 엄마의 영향력을 떠낫다. 예전의 악의 소용돌이에 다시 말리지 말자. 부모로서 공경하지만 감정은 남에게 대하듯 하자. 1.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인정하자. 엄마를 그렇게 만드신건 하나님이다. 그분이 아들만 사랑하는 것도 그렇다. Outside my control 타조의 특징들 1 )타조는 날개를 재빠르게 치기는 하지만, 황새처럼 날지는 못한다.  2 ) 타조는 땅바닥에다가 알을 낳는다. ☞ 흙이 그 알을 따스하게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3) 타조는 그 알이 발에 밟혀서 깨어질 수 있음을 알지 못한다.  4) 타조는 들짐승이 그 알을 짓밟을 수도 있음을 알지 못한다. 5)타조는 자기가 낳은 알을 남의 알처럼 거칠게 다룬다. 6) 타조는 알을 낳는 일이 헛수고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도 하지 못한다. ☞ 하나님이 타조를 어리석은 짐승으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예수님은 나를 위해 저주받으시고 나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도 다 씻겨주셨다. 그런데 나는 다시 죄의 유혹에 빠진다. 정당하고 옳다는 이유로 또 엄마한테 받은 옛날 받은 상처를 곱절로 갚아주고 싶은 마음을 사단은 이용해 나를 죄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죄를 rationalize하고 이 정도는 말해도 된다고 내가 판단한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내안에 계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이미 모든 것을 주신 예수님안에 거하며 그분을 바라볼께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깨어있어 그분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될것이다. 나 대신 나의 저주를 짊어주신 예수님을 바라보자.